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형선(衡善). 이조참판 조익정(趙益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조팽(趙彭)이고, 아버지는 전한 조종경(趙宗敬)이며, 어머니는 부사 이잠(李箴)의 딸이다.
1561년(명종 16) 감시생원(監試生員) 제1인으로 뽑혔고, 156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대교·승문원주서를 거쳐 홍문관수찬으로서 을사궤망의 원억(乙巳掛網之寃抑)을 신설(伸雪)하고, 이황(李滉)의 저술을 『유선록(儒先錄)』에 넣을 것을 건의했으며, 향약을 시행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수찬·수찬·지평을 거쳐 교리에 이르렀을 때, 재상 이준경(李浚慶)이 죽음에 임하여 조정에 붕당의 조짐이 있음을 말한 데 대하여 삼사(三司)가 공격하여 죄주기를 청하자 심희수(沈喜壽)와 더불어 이준경을 적극 변호하였으며, 성혼(成渾)을 적극 천거하였다.
이조정랑·의정부검상사인·헌납·장령을 거쳤다. 1575년(선조 8)에 병이 나니, 선조가 즉위 이래 시강(侍講)의 공을 생각하여 약을 내리고 의원을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