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를 손으로 약선(藥線)에 붙이는 지화식점화법(持火式點火法)에서 화승식점화법(火繩式點火法)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방아쇠를 연한 화승물림쇠인 용두(龍頭)를 기계로 조립한 반자동식이어서 방아쇠를 당겨 용수철을 이용한 화승을 물린 용두가 화명(火皿)에 있는 화약에 점화함으로써 발사하는 과정으로 발전하였다.
《융원필비 戎垣必備》‘조총조’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화기가 모르는 사이에 살벌하고 뜻밖에 혹독함이 조총 같은 것이 없다. 조총의 힘은 능히 갑옷을 뚫고, 쏘면 그 명중함이 다만 활이 버드나무를 뚫는 것만이 아니다. 대저 이중(二重) 갑옷을 뚫는 날카로움이 그 총신이 긴 데 있다. 총신이 길면 화기가 새지 않아서 총알이 멀리 나가고 힘이 있다. 쏘면 능히 명중함은 나가는 총구가 곧은 데 있다. 총구가 곧으면 장약하는 데 적의하고 점화하여도 동요하지 않는 고로 능히 10발을 쏘면 반드시 8, 9가 명중한다. 즉, 나는 새가 숲에 있어도 모두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로 인하여 득명(得名)하였고, 이 때문에 조총이 이기(利器)인 것이다. 이는 기병이나 보병이라도 모두 쏠 수 있고, 귀한 바는 만들 때 연철(鍊鐵)을 숙정(熟精)시키고 총렬(銃列) 뚫음을 곧게 뚫어서 막힘이 없게 한 다음에라야 바야흐로 좋은 것이다.” 하였다.
조총은 15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용두의 물림쇠가 항상 올라간 형태이고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용두가 화명에 접착하게 되어 있다. 그런 관계로 급속한 점화를 바랄 수는 없으나 폭발할 위험은 없는 이점이 있다.
이 점화법은 두 가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유럽의 일반적 화승총으로는 용두의 위치가 개머리판 쪽을 향하여 통상 우편측에 붙어 있고, 또 한 종류는 용두나 총구편으로 향하여 있는데, 이 후자의 형태가 16세기경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모로코를 경유하여 1543년 일본의 다네가섬(種子島)에 전래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1590년(선조 23) 3월 일본사자 히라요시(平義智)가 선조에게 조총을 진상하고 간 일이 있으며,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선조 26) 9월 13일에는 이순신이 조총을 만들어 진중에서 시방(試放)한 뒤 조선 후기 후장식(後裝式) 소총이 도입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