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덕일(德一), 호는 학해당(學海堂). 진사 조존영(趙存榮)의 아들이다.
1864년(고종 1)부터 3년간 죽산부사로 있었으며, 병인양요 때에는 참모군관을 겸임하였다.
1866년 12월 부령부사로 임명되었으나 그 다음해 1월 병으로 교체되었고, 3월에 훈련도감 천총(千摠)·내금장(內禁將), 1868년 좌부승지, 그해 8월부터 1871년까지 제주목사, 1873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1874년 도총부부총관, 1876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11월 통리아문(統理衙門)이 설치되자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로 군무사당상(軍務司堂上)에 임명되었으며, 그뒤 군무사분국절목(軍務司分局節目)에 따라 참모국(參謀局)을 담당하였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대원군에 의하여 발탁되어 금위대장이 되었으며, 대원군정권이 붕괴한 다음인 8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임명되었고, 또한 동지삼군부사(同知三軍府事)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손자수(孫子髓)』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