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즉차(洲利卽次)로도 표기되어 있다. 513년(무령왕 13) 6월 왕명을 받고 장군 저미문귀(姐彌文貴) 및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와 함께 귀국하는 왜사(倭使) 오사야마기미(意斯移麻岐彌)를 따라 왜에 파견되었다.
이 때의 임무는 가야제국(伽倻諸國)의 하나인 반피국(伴跛國)이 지금의 섬진강유역에 해당하는 백제의 기문(己汶)의 땅을 공격하여 점령한 데 대한 외교적인 방안, 즉 야마토정권(大和政權)의 세력과 연계하여 그 땅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왜에 문화전수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516년 9월에도 왜에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의 파견은 백제가 기문의 땅을 회복함에 따른 영토분쟁의 매듭에 대한 정리로서, 백제가 왜에 대한 구속을 늦추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때 함께 건너간 오경박사 고안무(高安茂)로 하여금 전임자인 단양이를 대신하게 하고 귀국하였다.
이처럼 백제는 선진적인 문화의 전수로 왜세력을 백제의 영향권내에 묶어 두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목적에 주리즉이가 깊숙이 개입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