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목판본.
책머리에 있는 저자의 「진주역본의구결소(進周易本義口訣疏)」에 의하면, 책의 편찬은 저자가 강원도의 간성군수로 재직한 3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간성군수로 임명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위의 소에 의하면 1602년(선조 35) 『주역』의 교정을 그만두겠다는 상소를 올린 뒤, 즉 좀 더 좁힌다면 1603년 5월 『주역언해』의 편찬이 일단락된 뒤(宣祖實錄 36년 5월 戊辰條 참조)에 곧 임명된 듯하다.
따라서, 편찬의 완성은 1605년경의 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간행은 인조조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저자가 돌아갔을 때에 실록의 사평(史評)에서 이 책이 행해지지 못하였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光海君日記 4년 7월 癸卯條 참조). 구결표기 한글자료의 특징으로 미루어 근대국어의 초기, 곧 17세기 전반기인 인조 때나 그 직후의 간행으로 보인다.
책머리에 범례와 소가 있어서 편찬의도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주역』 1부를 사가지고 와서 탐독하였는데 의문이 생기면 스스로 설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 행해지던 『주역』의 구결은 정자(程子)의 『주역전(周易傳)』을 위주로 하였으나, 저자는 주자(朱子)의 『주역본의(周易本義)』를 중심으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내용의 서술은 괘(卦)의 효(爻)를 해석한 뒤에 ‘단왈(彖曰)’이라 하여 단을 해석하는 방식, 곧 단전(彖傳)의 말을 각 괘사(卦辭)에 떼어 해석하고 있다. 이는 『주역』의 본문과 본의의 글을 혼동하기 쉽게 한 결과가 되었다.
이 책의 한글로 된 구결은 유학사와 국어사의 연구자료로서 주목된다. 구결의 표기는 다른 언해서나 구결서와 같이 본문의 구절 사이에 쌍행으로 되어 있다.
『주역』의 구결은 세조 때의 『주역전의구결』, 16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주역대문』, 1606년의 『주역언해』 등 간본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이 책도 다른 간본의 구결과 똑같지 않다.
예를 들면, 初九ᄂᆞᆫ 潛龍이니 勿用이니라(전의 Ⅰ 3b, 대문 상 1b, 언해 Ⅰ 1a), 初九ᄂᆞᆫ 潛龍이니 勿用ᄒᆞ라(본의 상 2a), 乾道ㅣ 變化이어든 各定性命ᄒᆞᄂᆞ니 保合大和ᄒᆞ야 乃利貞ᄒᆞ니라(전의 Ⅰ 9b, 대문 상 2a), 乾道ㅣ 變化에 各定性命ᄒᆞᄂᆞ니 保合大和ᄒᆞ야 乃利貞ᄒᆞ니라(언해 Ⅰ 3b), 乾道ㅣ 變化애 各定性命ᄒᆞ고 保合大和ᄒᆞ야 乃利貞이라(본의 상 1b)와 같다. 이들은 유학사연구에 이용될 것이다.
구결의 한글표기는 국어사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ㅿ, ㆁ이 사용되지 않았다. 곧 강세를 뜻하는 조사 ‘ᅀᅡ'가 ‘아’ 또는 ‘야’로 나타나며, 받침에서도 ㅇ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丈人이라아 吉코(상 17b), 大吉이라야 天咎ㅣ리라(하 26b), 求王命ᄒᆞ야아 受福也ㅣ라(하 32a), 改邑이언뎡(하 30b)이다.
둘째,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君德也○ᄉᆡ라(상 3b), 憂則達之ᄒᆞᆯᄉᆞᆯ(상 3b)이다.
셋째, 구개음화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改邑이언뎡(하 30b), 大疑哉 ᅵᆫ뎌(상 5a) 등과 같다. 이러한 특징은 자료의 연대를 17세기 전반기로 추정하게 하는데, 위에 말한 책의 편찬과 간행시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컨대 근대국어 전기의 자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