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온주인(溫州人)으로 1005년(목종 8) 상인을 따라왔는데, 학사 채충순(蔡忠順)이 주저가 재간 있는 것을 알고 왕에게 아뢰어 머무르게 하였다.
예빈성주부(禮賓省注簿)에서 시작하여 수개월이 못 되어 습유(拾遺)가 되고, 이어 제고(制誥: 詔書)를 맡았다. 1011년(현종 2) 현종이 거란을 피하여 나주로 남행할 때 호종한 공으로 예부시랑 중추원직학사(禮部侍郎中樞院直學士)가 되었다.
2년 후인 1013년 수찬관(修撰官)을 겸하고, 이어 내사사인(內史舍人)·비서감(秘書監)·우상시(右常侍)를 역임하고, 1014년 지공거(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1021년 한림학사승지 숭문보국공신 좌산기상시 상주국 해남현개국남(翰林學士承旨崇文輔國功臣左散騎常侍上柱國海南縣開國男)에 봉해지고 식읍 300호를 받았으며 1022년 예부상서에 이르렀다.
문한(文翰)이 뛰어나 외국과 교빙(交聘)하는 사명(辭命)을 많이 지어 왕의 은우(恩遇)가 두터웠다. 행서에 능하였으며, 주저가 찬한 현화사 비문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