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봉수대 ( )

목차
관련 정보
주전 봉수대
주전 봉수대
통신
유적
국가유산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전기 봉대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주전봉수대(朱田烽燧臺)
분류
유적건조물/교통통신/통신/봉수
지정기관
울산광역시
종목
울산광역시 시도기념물(1997년 10월 09일 지정)
소재지
울산 동구 주전동 산 192-2번지 일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전기 봉대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
내용

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봉수대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울산군에는 봉화가 임을랑포·아이포·이길·하산·가리·천내·남목·유등포 등 여덟 곳에 있었다.

이 봉화가 있는 곳이 남목천(南木川)과 인접해 있으므로, 이 봉화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나 있는 남목봉화라고 생각된다. 남목봉화는 북쪽으로 유등포봉화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천내봉화는 북쪽으로 남목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21리 305보 떨어져 있으며, 남목봉화는 북쪽으로 유등포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28리 15보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남목천봉수는 서쪽으로는 천내봉수, 북쪽으로는 유포봉수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보면, 남목천봉수는 울산부의 동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전국 봉수의 주요 간선은 5개 직봉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제2거(炬)는 '동래'에서 ‘서울’ 간으로 직봉 44개와 간봉 110개로 이루어졌다.

제2거 봉수에는 10개의 간봉 지선이 있다. 동래 간비오봉수에서 첫 봉화를 피운 간봉은 기장의 남산→아이→울산의 이길→가리하산→천내→남목→경주 하서지 등을 거쳐 안동의 봉지산 직봉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남목봉수는 경상도 남동해안의 중요한 봉수 가운데 하나였다.

봉수대는 해발 192m의 봉대산에 있다. 지름 5m, 높이 6m의 원통형 석축으로 된 구조이다. 봉수대에는 3칸의 봉대사(烽臺舍)가 있었다. 이 봉수터에 있는 봉화사 건물이 봉대사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조선 말기 전기통신법이 도입되고 봉수제가 폐지되자 봉수군들이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남목천봉수의 봉군 박경원(朴景元)은 그대로 봉대사에서 살면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봉대사에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봉화사며, 손자 박동수가 이 절을 맡아 오다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절을 유지하고 있다.

이 봉수대는 박경원과 손자 박동수 및 그 후손들에 의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봉수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남동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대동지지(大東地志)』
『한국의 봉수제도』(국방군사연구소, 1997)
『울산향토사연구논총』(이유수, 1996)
『경남문화재대관-도지정편-』(경상남도, 1995)
『울산시사』(울산시, 1987)
「통신수단의 관리」(최완기,『한국사』24, 국사편찬위원회, 1994)
에이에프가암호인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