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통일 직후 9주제도가 완성된 685년(신문왕 5)경에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제정된 것으로 짐작된다. 각 주에 1인씩 배치되어 주 관할내 여러 사원에 대한 감독을 맡았으며, 군통(郡統) 2인의 보좌를 받았다.
그런데 827년(흥덕왕 2)에 만들어진 시흥(始興)의 <중초사당간석주기 中初寺幢竿石柱記>나 833년에 만들어진 청주(菁州 : 지금의 晉州)의 <연지사종기 蓮池寺鐘記>에 의하면, 한산주(漢山州)와 청주의 주통이 모두 황룡사(皇龍寺)의 승려들로 되어 있어 실제로 각 주에 주통이 파견되었는지 어떤지 의문이다.
어쩌면 주통은 하대에 들어와 신라의 중앙집권체제가 무너진 뒤에는 그 실제적 기능을 상실한 채 다만 이름뿐인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