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예로부터 ‘竹’과 ‘祝’이 동음 동성(同音同聲)인 데에 착안하여 축수(祝壽)의 의미로서 취죽도(翠竹圖)를 많이 그렸다.
대나무는 군자(君子)에 비유되어, 소나무·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 또는 난과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일컬어졌다.
『논어』에는 “益者三友 損者三友(익자삼우 손자삼우)”라 하였고, 『원차산개론(元次山丐論)』에는 “古人鄕無君子 則與山水爲友 里無君子 則以松竹爲友 坐無君子 則以琴酒爲友(고인향무군자 즉여산수위우 이무군자 즉이송죽위우 좌무군자 즉이금주위우)”라 하였으며, 중국 북송 때 소동파(蘇東坡)의 시구 중에는 “風泉兩部樂 松竹三益友(풍천양부악 송죽삼익우)”라 한 것이 있다.
남송 때에는 마원(馬遠) 등의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가 알려져 있고, 또 원대(元代)에는 조맹부(趙孟頫) 등이 세한삼우를 소재로 많이 그렸는데, 당시의 그러한 문인화(文人畫)의 경향은 각종 공예 의장문양에 영향을 주었다.
고려도자(高麗陶磁)에 묵매(墨梅)·묵죽(墨竹) 등의 문양이 그려진 것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이며, 매병(梅甁)이나 편호(扁壺) 등의 넓은 지면(地面)에 흑·백으로 상감(象嵌)하여 그려진 매·죽의 문양은 그 시대 문인화풍의 영향을 말하여 준다.
조선시대의 청화백자에는 그러한 남송화풍의 운치를 보여주는 매죽문(梅竹文)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나타나는데, 그것은 고려 말의 화풍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