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개차산(皆次山)이었는데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하여 개차산군으로 하였고, 신라 때 경덕왕이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죽주(竹州)라 하였고, 성종 때 단련사를 두었으나 목종 때 폐하였다.
그 뒤 1018년(현종 9) 광주(廣州)에 예속시켰다가 명종 때 감무를 두었다. 1226년(고종 13) 몽고군이 죽주성을 공략하였으나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가 이를 격퇴하였다.
1413년(태종 13) 죽산현으로 하여 현감을 두었으며, 1434년(세종 16)에는 충청도 소관에서 경기도로 이속시켰다. 1543년(중종 38) 도호부로 승격시켰으며, 그 뒤 1895년(고종 32)충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다음해 경기도 죽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일면ㆍ근삼면ㆍ원삼면ㆍ근일면 등이 용인군에 편입되고, 나머지 면이 안성군으로 편입되었다. 1992년에는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수어후영(守禦後營)을 설치하여 목사가 여주진관의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여 여주를 비롯한 6개 읍을 통괄하였다.
당시에 이곳은 차령산맥 북쪽의 군사교통요지로 목천(木川)ㆍ음성ㆍ진천의 남쪽지방과 양지·용인의 북쪽지방을 연결하였다. 또한 좌찬역(佐贊驛)과 분행역(分行驛)은 삼남지방을 잇는 중요한 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