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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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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와 평안도의 큰 고을에 둔 향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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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함경도와 평안도의 큰 고을에 둔 향리직.
내용

1414년(태종 14)에는 서울의 육조에도 녹사(錄事)와 함께 이 직을 설치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 함경도·평안도의 지인은 서울의 녹사와 비슷한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지방의 토관(土官)들 밑에서 지방행정·군사에 관련된 일을 맡아보았다.

함흥부의 지인은 군사정보의 전달과 진상물의 수송과 같은 일을 담당하였다. 평안도의 지인은 단종 때를 기준으로 좌도에 70인, 우도에 30인을 두었다. 이들을 둔 고을은 영흥·평양부, 영변대도호부, 경성도호부, 의주목, 회령·경원·종성·온성·부령·경흥·강계 도호부였다.

이들은 서울의 녹사와 같이 근무일수 514일마다 1계급씩 진급하여 종6품에 이르면 근무를 면제시켜주고 토관직에 임명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3년마다 1인씩 밖에 임용되지 못하였으므로 기회가 드물었다. 따라서, 50세 이상이 된 자는 관직 없는 산계(散階)만 주어 퇴역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태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경국대전』
「조선초기의 토관에 대하여」(이재룡, 『진단학보』 29·30합병호, 196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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