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다. 정3품∼종6품의 참상 문관 중에서 선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규장각의 창설과 함께 새로 설치된 직제였다.
사관(史官)과 지제교(知製敎)를 당연직으로 겸임하는 조선 후기 청요직 중의 청요직으로 규장각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상관인 제학·직제학 등이 모두 타관서의 중요한 관원으로 본직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교(待敎) 1인과 함께 규장각에 2개뿐인 정규직으로서 역대 국왕의 친필 문헌·서화 및 왕실도서의 관리책임자였다.
그의 임명은 매우 신중하여 반드시 이전에 홍문관직을 역임한 관원들 중에서 규장각의 제학·직제학이 권점(圈點)으로 선출하여 이조로 보내어 임명하도록 하였다. 직각과 대교는 당대에 가장 명망있는 젊은 문관들 중에서 선임되었고, 또 이를 역임한 자는 그 출세가 보장되기도 하였다.
이 두 직은 여기에 임명되는 자가 다른 직함이 없으면 실직(實職)으로 되고 다른 직함이 있는 경우에는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실상 직각이나 대교에게 타직을 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또 타직으로 옮겨간 뒤에도 계속하여 이를 겸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서관(校書館)이 규장각에 병합되어 외각(外閣)으로 편제된 뒤에는 내각의 직각이 외각의 종5품 겸교리직을 당연직으로 겸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