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수(安駉壽) 등이 학생을 모아 직조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기업적 이윤도 추구하려고 한 반관반민의 직조공장으로 농상공부와 협의하여 설립하기로 하고 공장건물은 농상공부에서 제공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농상공부는 직조권업장 설립과 학생모집에 관한 내용을 관보(官報)에 게재하였다. 한편, 공장에 설치할 수백 대의 직기(織機)와 직조에 필요한 면사(綿絲)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일본인 직공도 고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사업의 추진자는 중간에 의정부참서관인 김익승(金益昇)으로 바뀌었다. 김익승은 직조공정만을 다룰 일본인 직공을 고빙(雇聘)한 뒤, 1899년 2월 계동에 있는 전(前) 무관학교 건물에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그 뒤 공장이 제대로 운영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