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385년∼392년. 근구수왕의 둘째아들이며 침류왕의 동생이다. 용맹하고 총명하였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즉위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자 태자가 어리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태자 아신(阿莘)에게 돌아가야 할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위 후 진사왕은 남진하여이내려오는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386년(진사왕 2)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靑木嶺 : 지금의 개성)에서 북으로는 팔곤성(八坤처)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關防)을 쌓았다. 390년 달솔(達率)진가모(眞嘉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공격하게 하여 200여 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고구려광개토왕의 뛰어난 용병술에는 당하지 못하여, 392년 석현성(石峴城 :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청석동으로 추정됨.) 등 10여 성과 한수(漢水 : 지금의 한강) 이북의 여러 부락이 고구려군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또 천연의 요새지인 관미성(關彌城 : 지금의 교동도)도 함락되었다.
이렇듯 진사왕대에는 고구려의 남진에 따른 군사적 압박으로 시종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고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다. 진사왕은 죽음에 대하여 『삼국사기』구원(狗原)의 행궁(行宮)에서 사냥하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일본서기』에는 침류왕의 태자 아신의 세력에 의하여 제거된 것으로 나오는데 『일본서기』의 기사가 타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