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 경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8년(태조 7)에 중건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목사 김홍(金泓)이 대성전 · 동무(東廡) · 서무(西廡)를 중수하고 명륜당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풍화루(風化樓)를 신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대성전을 중건하였고, 1644년(인조 22)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명륜당, 동 · 서재를 중건하였다. 1811년(순조 11)과 1907년에 중수하였고 1979년 동 · 서재를 중건하였으며, 1984년에 명륜당과 1985년에 풍화루를 각각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각 5칸의 동무와 서무, 내삼문(內三門),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 밖에 부속건물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서원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은 대부분 산실되었고 《진주향교유계안 晉州鄕校儒稧案》 등 몇 권의 책만이 남아 있다. 하계방학 때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