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연산군 12) 3월 종실 견성군(甄城君)의 집을 징발하여 가흥청과 악사들을 거주시키고 환락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가흥청은 전국에서 뽑혀온 어린 기생과 양민 처녀들로 아직 대궐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을 말한다.
1505년에 이미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뇌영원(蕾英院)을 설치하였으나, 그 수가 넘치게 되자 다시 진향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밖에 정식 흥청들을 위한 취홍원(聚紅院)·사방원(含芳院) 등이 있었고, 장악원(掌樂院)도 연방원(聯芳院)으로 개칭하여 기생들을 두고 환락의 장소로 삼았다.
이들 각 원에는 총 1,000여 명의 악사들이 배정되어 풍악을 담당하였다. 기생들과 악사들의 수용 및 관리 운용에 소요되는 물품과 비용은 각 도에 할당하여 징수하였는데, 이를 위하여 호화고(護花庫)라는 특별재정기구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실각하자 진향원을 비롯한 모든 환락장은 해체,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