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유적명은 우산하(禹山下) 1041호분(JYM 1041)이다. 국가지정인 동구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소재지는 중국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太王鄕) 우산촌 일대 촌락이다. 건축시대는 고구려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우산남록(禹山南麓) 완만한 구릉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이 무덤으로부터 동남방 약 500m 지점에 태왕릉이 위치하고 있고 서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약 50m 정도가면 우산하 1080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1974년집안현문물보관소가 집안현소재 문화유적에 대한 보호 및 관리를 진행시키던 과정에서 발견하여 1차 조사한 후 같은 해 9월에 길림성 박물관이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현재는 무덤축조에 사용되었던 돌들이 주변에 마구 널려져 있고 적석부(積石部)에는 잡초가 무성한 실정이다.
우산의 남쪽에 있는 무덤들 가운데 석실이 마련된 적석총으로 파괴가 심하나, 적석외부는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묘실은 기단 중앙부에 거대한 판석들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가로 2m, 세로 3.15m, 높이 2.32m 이다. 서벽에 양도가 마련되어 있는데 묘실내의 관대(棺臺)보다 70cm 정도가 높다.
석실의 남북벽면에는 횡으로 35m의 간격을 두고서 소공(小孔)이 배치되어 있고, 그 부분에 연화(蓮花)가 묘사되어 있다. 석실의 사우(四隅)에 주(柱)·양(梁)이 묘사되어 있다. 동벽 량의 아래는 황핵의 장막(帳幕)이 내려져 있는 가옥이 있고, 그 중앙에 남자상이 보이는데 묘주(墓主)로 생각된다. 묘주의 집에는 연회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북벽의 양하(梁下)에는 소공(小孔)을 같춘 연화가 나란히 그려져 있고 중앙에 사슴, 좌상(左上)에 수목 등이 묘사된 수렵도가 있다. 사슴의 좌쪽에는 절풍(折風)과 방책(方幘)을 한 3인의 인물이 있고 정시연화(正視蓮花)가 횡렬로 표현되어 있다. 도굴되었으나 사이호(四耳壺), 금동제 운주(雲珠), 철제·은제·칠기제품 및 황유도기(黃釉陶器)의 파편, 마구류, 쇠갑옷편, 철모, 철촉 등이 수습되었다. 이 중 주홍색 칠기편은 원래 관곽에 입혀졌다가 떨어져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은 지금까지 발견된 수십 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중 유일한 석분(石墳)으로, 고구려에서는 이미 적석묘에 묘실을 만들면서부터 묘실 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귀중한 유적자료이다. 또한 우산하 41호 고분은 고구려 묘제가 적석묘에서 봉토석실분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의 과도기적 형태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고구려의 문화적 변동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특히, 출토유물은 5세기 고구려의 칠기제조·금은세공·유도(釉陶)공예·방직 등 산업기술 및 공예 제방면의 발전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구려 사회사연구에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