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숙(敬叔), 호는 이재(頤齋). 차보인(車寶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차계생(車繼生)이고, 아버지는 차광운(車廣運)이며, 어머니는 최지(崔漬)의 딸이다. 부인은 아주 이씨(牙州李氏)로, 부인과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다. 차천로(車天輅)와 차운로(車雲輅)의 아버지이다.
1537년(중종 3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4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급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다. 중앙관직으로는 성균관·호조·예조·봉상시·교서감·승문원 등의 좌랑·주부·교리·교감을, 지방관직으로는 통진·항주·해주·평해·고성의 현감·군수를 역임하였다.
1575년(선조 8) 평해군수(平海郡守)를 지내다가 상한(傷寒)으로 사망하였다. 유몽인(柳夢寅)이 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경사에 널리 통했으며, 특히 문장에 능하였다고 한다.
아들인 천로·운로와 더불어 송나라의 삼소(三蘇: 蘇洵·蘇軾·蘇轍)에 비유되기도 했다. 문집 5, 6권을 남겼으나 병화에 소실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