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7년(성종 8) 8월에 예문관으로 하여금 친잠하던 선례를 조사하도록 하고, 1478년에 우부승지 손순효(孫舜孝)의 진언에 따라 창덕궁 후원에 채상단을 설치하였으며, 그 규모는 둘레가 2장(丈) 3척(尺), 높이 2척7촌이었다.
매년 봄 뽕잎이 피는 것을 보아 왕비가 세자빈·세손빈 및 봉호(封號)를 받은 내외명부(內外命婦)들과 더불어 장막을 치고 친잠례를 행하였다. 이 친잠의식의 절차를 규정한 것으로 1767년(영조 43) 3월에 제정된 『친잠의궤(親蠶儀軌)』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이 『친잠의궤』에 따르면 왕비가 다섯가지, 1품의 내외명부는 일곱가지, 2·3품의 부인들은 아홉가지의 뽕잎을 따도록 되어 있다. 창덕궁 주합루(宙合樓) 서편에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기르던 친잠실(親蠶室, 일명 書香閣)이 남아 있어서 순종왕후 윤비가 1924년까지 이곳에서 친잠례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