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여 ()

목차
교통
물품
고려 이전부터 사용된 왕실의 물건을 운반하는 기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이전부터 사용된 왕실의 물건을 운반하는 기구.
내용

고여와 비슷하게 생겼다. 왕실에 의식이 있을 때 귀중품을 옮기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사면을 아름다운 꽃무늬로 채색하고 들채가 있어 앞뒤 두 사람이 메게 되어 있다.

『고려도경』의 채여에 대한 기록에는 “채여는 셋인데, 하나는 조서를 봉안하고, 또 하나는 어서(御書)를 봉안하며, 앞의 한 채여에는 대금향구(大金香毬 : 도금한 향구로 渾天儀와 같은데, 그 가운데 3층으로 된 빗장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를 담았다.

그 제도는 오색무늬 비단을 쓰고 사이사이에 금수(錦繡)를 섞어 맺었으며, 위에는 비봉(飛鳳)을 만들고 네 모퉁이에는 연꽃이 보이는데 행진하면 흔들린다. 아래에는 붉게 칠한 좌석을 앉히고, 네개의 대[竿]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강학군(控鶴軍) 40인으로 이를 메게 한다.

앞에서는 두 사람이 의장을 잡고 맞이하여 인갈(引喝 : 벼슬아치가 행차할 때 앞에서 행인이 비키도록 소리치는 것)하니, 행동이 매우 엄숙하다. 왕세자와 고려의 관리들이 조서를 맞아 길목에서 채여를 바라보고 절하였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고려도경(高麗圖經)』
『국학도감』(이훈종, 일조각, 196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