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에서 택지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A지구), 공주대학교 박물관(B지구), 충청매장문화재연구소(C・D지구)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주거지와 수혈, 무덤, 저장혈, 고려조선시대의 무덤,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 문화층은 C지구에서 1개소, D지구에서 1개소가 조사되었다. 구석기가 출토된 곳은 흑운모화강암 위의 갱신세 퇴적층이다. C지구에서는 몸돌 1점, 잔손질되지 않은 격지 16점과 조각 39점, 잔손질된 석기 17점, 찍개 3점 등 7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D지구에서는 망치돌 2점, 몸돌 1점, 잔손질되지 않은 격지 1점, 잔손질된 격지 4점, 찍개 1점, 여러면석기 2점 등 1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C지구의 유물은 중기 구석기시대, D지구의 유물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D지구에서 3동이 조사되었다. 3기 모두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내부에 무시설식노지(無施設式爐址)가 1~2개 설치되었다. 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토기, 대부소호(臺附小壺), 이단경식(二段莖式)석촉, 갈판 등이 출토되었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된다.
원삼국~삼국시대 주거지는 A지구에서 3기, B지구에서 4기, D지구에서 12기가 조사되었다. 평면형태는 5기가 원형이며 나머지 14기는 방형·장방형이다. 내부에 설치된 노지의 형태는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연통부가 길고 ‘ㄱ’자 형으로 꺾여 있는 터널형노지와 연통부가 짧고 ‘ㅡ’자형인 화덕형노지가 설치된 노지로 구분된다. 두 형태 모두 점토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D지구 6호 주거지에서는 점토로 만든 지각시설이 확인되었다. 또 아무런 시설 없이 상면에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무시설식노지가 설치된 예도 있다.
주혈은 원형계주거지에서는 없거나 빈약한 반면 장방형주거지에서는 수혈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으며 벽기둥 외에 주거지 내부에 주혈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바닥은 대체로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B지구 4호주거지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데 특이하게 남쪽 단벽쪽에서 외곽으로 길이 11.5m의 구(溝)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구의 바닥면이 주거지의 바닥면보다 레벨이 높아 배수구의 기능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무덤은 B지구에서 분구묘 1기, 토광묘 22기, 옹관묘 11기, 석실묘와 석곽묘 3기가 조사되었다. 분구묘 1기는 조사대상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분구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장축 18m, 단축 14m이다. 분구 자락에 사람 머리 크기의 할석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분구 표면은 원래 즙석(葺石)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에서 매장주체부는 토광(土壙) 2기, 토장(土葬) 2기, 석곽 1기, 옹관 4기 등 모두 9기가 확인되었다. 매장주체부와 봉토가 동시에 조성되었거나 매장주체부는 시간차이가 있더라도 봉토의 마무리는 일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토광묘 22기는 목곽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것이 2기이며 나머지 20기는 목관이 있었다고 보고되었으나 유물의 부장위치 등을 고려할 때 실제 22기 모두 목곽묘일 가능성이 있다.
옹관묘는 생활용기를 사용한 합구식(合口式)에 횡치(橫置)한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연질계통의 적갈색 옹이 사용되었다.
횡혈식석실묘는 1기가 조사되었는데 연도에서 또 다른 석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석실묘 현실의 규모는 길이 560㎝, 너비 440㎝ 이며 단벽 중앙에 길이 240㎝, 너비 120㎝의 연도가 설치되어 있다.
고려~조선시대 유구는 건물지 2기가 A지구에서 조사되었고, 무덤은 A지구에서 15기, D지구에서 89기가 조사되었다. D지구에서는 조선시대 주거지 3기가 조사되었다.
천안두정동유적은 천안지역에서 최초로 구석기유물이 출토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취락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분구묘와 무덤을 통해 백제의 성장과 발전과정을 알려주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