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책. 필사본. 제8책은 일부가 탈락된 채 전하고, 제11책은 전하지 않는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여러 출판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평상시에 당시 사회의 폐단의 근원과 그 해결책을 모색해 지은 글들을 모아 “천가지 생각 중에 간혹 하나는 쓸 만한 것이 있다.”는 믿음에서 ‘천일록’이라고 하였다.
1796년(정조 20) 재앙이 계속되면서 정조가 구언하자, 이 중 시무(時務)에 관한 것만 골라 책자로 만들어 상소하면서, 또한 이것을 ≪천일록≫이라고 하였다. 그 뒤 1804년(순조 4) 인정전(仁政殿)에 화재가 발생한 뒤 순조의 구언에 따라 상소하면서, 또한 이것을 ≪천일록≫으로 이름붙였다.
이와 같이, 저자가 본래 ‘천일록’으로 이름붙였던 것은 세 가지가 있었는데, 말년에 이러한 것들을 모아 엮으면서 자서(自敍)를 붙여 ≪천일록≫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1책은 <건도 建都> · <치관 置官>이다. <건도>에서는 삼국 이래의 도읍 건립 내력, 전국의 산천 · 풍속 · 농업 · 생리 등 인문지리적 상황에 대해 논하였다. <치관>에서는 중국 및 우리 나라의 각 관청 및 관작의 설치 내력을 다루었다.
제2책은 <전제 田制> · <병제 兵制>로 구성되어 있다. <전제>에서는 주대(周代)의 정전제(井田制) 및 우리 나라 역대의 토지제도 · 공물제도(貢物制度) · 농정 등을 논하였다. <병제>에서는 우리 나라 역대의 군사 제도 및 여기에 대한 논의, 군사 경비, 중국 · 일본의 군사 제도 등을 논하였다.
제3책은 <관방 關防>으로, 전국 각지의 관방의 상황을 논하였다. 제4책은 <관수만록 觀水漫錄> 상 · 하를 수록하였다. 1793년 정월 수원부사를 유수로 승격하고 유수영(留守營)을 장용외영(壯勇外營)으로 정한 뒤 그 번영의 방책을 기술한 것이다.
이 부분은 조선 후기의 군사 정책 및 관방 계획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을 기술하고 있어 이 시기 군정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제5책은 과제(科制) · 용인(用人) · 화속(化俗) · 진정(賑政)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제6책은 곡부(穀簿) · 균역(均役) · 정전군부설(井田軍賦說) · 어장수세설(漁場收稅說) · 전화(錢貨) · 주전이해설(鑄錢利害說) · 채은편부설(採銀便否說) · 채금편부설(採金便否說) · 조창변통설(漕倉變通說) · 육진승도설(六鎭僧徒說) · 평시혁파의(平市革罷議) · 노방식목설(路傍植木說) · 금도설(禁盜說) · 신명법제설(申明法制說) · 양육인재설(養育人材說)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제7책은 염방(廉防 : 염치와 中正을 잃지 않도록 예로써 방지함) · 보폐(譜弊) · 향폐(鄕弊) · 막폐(幕弊) · 영리폐(營吏弊) · 역속폐(驛屬弊) · 경향영읍군교폐(京鄕營邑軍校弊) · 삼폐(蔘弊) · 군목폐(軍木弊) · 학교폐(學校弊) · 산지광점폐(山地廣占弊) · 노예(奴隷) · 충의(忠義) · 금개가(禁改嫁)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제5∼7책은 당시의 정치 · 사회 · 경제 등의 각종 제도 및 그 문제점 등을 논한 글이다.
제8책은 <농가총람 農家總覽>이다. 여기서 저자는 전에 나온 농서는 이미 당시 현실과 맞지 않게 된 점을 고려해, 예전부터 전래되어 오는 농사 방식을 소개하고, 자기의 견해를 덧붙여 농촌에 도움을 주고자 지은 글이다.
제9책은 효행(孝行) · 충렬(忠烈) · 정렬(貞烈) · 강직(剛直) · 인후(仁厚) · 수재(守宰) · 잡록(雜錄)으로 구성되었다. 유교적인 덕목을 실천한 인물들의 전기 내지 일화를 모은 것이다.
제10책은 <병진사월응지소 丙辰四月應旨疏> · <갑자이월응지소 甲子二月應旨疏> · <어초문답 漁樵問答>으로 구성되었다.
<병진사월응지소>는 1796년에 응지상소한 것으로, 무본(務本) · 화속 · 용인 등 13개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무책 時務策≫이라는 책자로 규장각도서에 있다. 당시 폐단의 실상, 그 폐단이 생기게 된 근본 이유, 구체적인 대응책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갑자이월응지소>는 1804년에 응지상소한 것으로 국왕의 덕목에 관한 조목 10개항과 당시 사회의 폐단에 대한 조목 10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일록≫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자로 규장각도서에 남아 있다.
<어초문답>은 광작(廣作)이 널리 행해지고 유식자(遊食者 :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놀면서 먹는 자)가 많은 당시 농촌의 현실을 지적한 글이다. 끝 부분에 저자가 쓴 자서(自敍)가 있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후반의 정치 · 사회 · 경제 · 군사 등의 제반모순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농촌지식인의 저술이다.
특히 이 시기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농업에 대해 당시 농촌에서의 관행을 조사하고, ≪농가집성 農家集成≫의 농업 기술을 검토한 가운데 당면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할 방도를 제시한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