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4년(숙종 10) 창건하였으며, 1722년(경종 2) 중수하였다. 진달래가 온산을 덮는 봄철에는 약산동대와 천주사가 꽃구름 속에 떠 있는듯하다 하여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불리어왔다. 이 절에서 약 30m 동북쪽 기슭에 있는 철옹성축성비에 따르면, 1684년 옛 성을 고치는 공사를 하면서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천주루(天柱樓), 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10.28m), 측면 2칸(6. 95m)이며, 10개의 기둥 위에 바깥쪽 7포, 안쪽 11포의 두공을 얹고 날아갈듯 한 합각지붕을 올렸다. 10개의 기둥 사이 거리와 30개의 두공 사이 거리를 모두 같이한 것이 특색이며, 다른 건물과는 달리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매우 높아 주위의 경사지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광전에 입힌 금단청은 이 시기의 우리나라 금단청을 대표하는 훌륭한 것이다. 보광전 맞은편에 있는 천주루는 가운데 다락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복도로 연결된 두 채의 다락집이 앞으로 내밀어 날개처럼 설치되어 있는데, 동쪽 다락에는 향일헌(向日軒), 서쪽 다락에는 망월대(望月臺)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천주루에 오르는 계단은 가운데 다락 앞에 놓여 있으며, 이 다락집 뒤로는 단층집들이 잇달아 있어서 마치 옛 관청건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천주루를 이렇게 지은 것은 임진왜란 때 왕이 영변으로 피난을 왔는데 숙소가 마땅하지 않아 불편을 느낀 일이 있어, 영변부사가 왕이 만일 다시 영변으로 오게 되면 숙소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절은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