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원래 청동기로서 발달된 무기의 하나이지만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재료만 철로 교체되었다. 도(刀)와는 달리, 날이 양쪽에 나 있다.
베는 도구로 장검(長劍)과 단검(短劍)으로 나뉘는데, 길이 50㎝ 이상이면서 경부길이가 10㎝ 내외로 긴 것을 장검, 50㎝ 미만에 경부가 3∼6㎝인 것을 단검으로 분류한다. 철검의 몸체는 단면 능형 혹은 렌즈형이며 경부에는 자루와의 연결을 위해 구멍을 뚫은 것도 있다.
장검은 이른 시기에 평양 정오동 10·11호, 황해도 은율 운성리 4·5·9호, 황해도 은파군 갈현리하석동 고분, 평양 상리 고분 등 낙랑고분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에는 신부에 칼집흔이 남아 있기도 하고, 또 신부와 뿌리(莖部)의 경계부에 청동장식이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남부지방에서는 경주 구정동 유적, 제주 용담동 유적, 울산 하대 고분군, 김해 양동 고분, 합천 저포 A40호분 등 원삼국시대 분묘에서 산발적으로 출토되기는 하나 북부지방과 같이 빈번하지는 않다. 이는 이후 출현하는 장신의 철창,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의 발달로 그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며, 한국이 중국과 같이 검문화가 발달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삼국시대에 들어서면 대형고분의 부장품 목록에 장검이 있으나 큰칼과 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단검은 원래 청동기로 발달된 무기이며, 철의 보급으로 인해 철기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세형동검(細形銅劍)과 공반하여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칼집과 청동장식구 등이 부착된 채로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경주 조양동 5·38호, 경주 사라리 130호, 창원 다호리 1호, 김해 양동 55호 등 많은 예로서 알 수 있다. 칼집모양은 처음에는 창원 다호리 1호에서 출토된 상태로 보아 나무에 옻칠을 하고 청동제 테를 두르고 결입부를 표현하는 등 청동검의 칼집과 같은 형태로 청동검에서 철검으로의 이행을 잘 알 수 있다. 단검 역시 2세기대 이후로는 출토 예가 적어지면서 2단 자루 철창과 공반되다가 점차 사라지고 쇠투겁창(鐵矛)이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금제장식보검의 검신도 쇠로 만들어진 단검으로, 페르시아나 남러시아지방의 것이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