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10책. 활자본. 이 책의 원고가 이루어진 시기는 ≪개수첩해신어 改修捷解新語≫의 범례에 의하면 1618년(광해군 10)으로 되어 있으나, 이때에는 원고의 일부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전체가 완성된 것은 1625년(인조 3) 이후, 또는 1636년 이후라는 학설이 있다.
이 책은 1676년(숙종 2)에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로 간행되었으며 현존하는 활자본에도 강희 15년(1676, 康熙十五年丙辰孟冬開刊)이라는 간기가 보인다.
권1에서 권4까지와 권9의 전반부는 동래와 부산포의 조선관리와 부산의 왜관(倭館)에 거주하는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내용을 중심으로, 일본인의 내왕과 접대, 무역할 때 사용되는 회화를 문답체로 엮었고, 권5에서 권8까지는 통신사(通信使)의 일행이 부산포를 떠나 대마도(對馬島)·대판(大坂)을 거쳐 에도(江戶)를 다녀오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대화체로 엮어 일본어 회화를 학습하게 한 것이다.
권9의 후반부에는 당시 일본의 8주(州)의 이름과 그에 속한 66군의 수효를 들었다. 권10은 당시 대왜관계에 쓰이던 각종 공문서나 소로문체(候文體)의 서간문 서식을 예로 보였다. 권1과 권10의 권말에는 한자로 된 일본어의 난해어구를 우리말로 풀이하여 본문에 나타난 순서대로 모아놓은 일종의 어록해(語錄解)가 있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으며, 본문은 크게 일본어를 히라가나(平假字)로 쓰고 그 오른편에 작은 글씨로 발음을 한글로 적었으며 한 어구가 끝난 곳에 두 줄로 우리말의 해석을 역시 작은 글씨로 써놓았다.
이 책의 저자인 강우성은 본시 진주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10년 만에 돌아와 사역원 왜학교회(倭學敎誨)로 있으면서 만력기유(萬曆己酉, 1609) 증광시의 역과(譯科) 왜학에 3등으로 합격하여 일본어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1617년에 통신사 오윤겸(吳允謙)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온 것을 비롯하여 1624∼1625년, 1636∼1637년의 세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다.
이 때에 경험한 것이 이 책의 권5부터 권8까지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세 차례에 걸친 일본의 왕환(往還)이 서로 겹쳐져 있기 때문에 이 가운데 어느 여행의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1676년의 활자본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있었으므로 뒤에 내용의 첨삭이 있었거나 전면적인 개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국어의 역사적 연구나 중세일본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많은 연구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