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집 ()

청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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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상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7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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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상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71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사항

40권 14책. 목판본. 1671년(현종 12)경 저자가 직접 편정(編定)한 초고에 의해 간행되었으며, 1861년(철종 12) 그의 종10세손 세균(世均)에 의해 완판(刓板)이 보판되었다.

1977년 그의 손자 수증(壽增)이 수집한 유집 3권에 후손 영한(寗漢)이 수집한 4권이 소실되자, 14대손 창현(彰顯)이 유문을 모으고 부록을 붙여 모두 9권으로 만들어 ≪선원유고 仙源遺稿≫와 합편, 전서(全書)로 영인하였다.

규장각도서 · 장서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두에 저자의 자서(自敍)와 이강선(李康先) · 장연등(張延登)의 조천록서(朝天錄序), 권말에 8대손 흥근(興根)의 발문이 있다. 유집의 6권말에는 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이 있다.

권1∼8 시 915수, 가곡(歌曲) 3수, 권9에 조천록(朝天錄), 권10에 청평록(淸平錄), 권11에 설교집(雪窖集), 권12에 설교후집(雪窖集), 권13에 설교별집(雪窖別集), 권14에 표전(表箋) 4편, 교서(敎書) 6편, 상량문 2편, 책문(冊文) 1편, 권15에 제문 17편, 명(銘) · 찬(贊) · 송(頌) 5편, 권16에 게첩(揭帖) 6편, 국서(國書) 7편, 권17∼22에 소차 138편, 권23에 계사(啓辭) · 의(議) 각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24∼30에 비명(碑銘) 47편, 권31 · 32에 묘갈명 23편, 권33∼35에 묘지명 28편, 권36에 묘표음기(墓表陰記) 15편, 권37에 행장 6편, 권38에 기(記) 5편, 서(序) 19편, 권39에 제발(題跋) 17편, 잡저 3편, 권40에 서독(書牘) 45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영인본의 유집은 권1에 시 6수, 시조 3수, 권2 · 3에 남사록(南槎錄), 권4에 설교집, 권5에 문(文) 3편, 권6에 남한기략(南漢紀略), 부록으로 반교문(頒敎文) · 교서 · 사제문(賜祭文) · 치제문(致祭文) · 유사(遺事) · 석실잡록(石室雜錄) · 묘지명 · 묘정비(廟庭碑) · 국조보감(國朝寶鑑) · 실록(實錄) · 가사(家史) · 황명배신전(皇明陪臣傳) · 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조천록>은 1627년(인조 5) 명나라에 정사로 다녀왔는데, 이 때의 시문과 예부정문(禮部呈文)을 합해 사행시문(使行詩文)으로 편찬한 것으로, 그 곳의 이강선과 장연등으로부터 서문을 받아 왔다.

<청평록>은 저자가 1635년 청평(淸平)을 유람하면서 출발할 때부터 당시 거처하던 석실(石室)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일기체로 서술하고, 명승고적에 대해 읊은 시편(詩篇)을 곁들인 문장이다.

<설교집>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화의를 배척하다가 청나라 심양(瀋陽)에 구금되었을 때, 함께 구금된 조한영(曺漢英)과 수창한 시편을 모아 엮은 것으로 한(漢)나라 소무(蘇武)의 고사를 본떠 ‘설교집’이라고 한 것이다.

그의 문장은 중후하면서도 이로(理路)가 정연하고 교식(巧飾)을 일삼는 일이 없으면서도 문사(文辭)가 뛰어나다. 소차(疏箚)의 문장은 순순설유(詢詢說諭)하는 의취가 드러나고, 위국진충(爲國盡忠)의 지성이 문자 사이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1639년 12월에 바친 <청물조병심양소 請勿助兵瀋陽疏>는 친명(親明)과 배청(排淸)을 철저히 주장하는 의기와 간박(懇迫)한 충정이 표출되어 있다.

의(議)는 주로 국상을 당했을 때 여러 의절(儀節)에 대해 헌의(獻議)한 것이 대부분이다. 원로 대신으로서 국정의 모든 분야에 깊이 참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100여 편에 달하는 묘도문자(墓道文字)를 제작했는데, 이것을 통해서도 그가 병필가(秉筆家)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묘도문자 중에는 이항복(李恒福) · 조헌(趙憲) 등의 신도비명을 비롯한 명인들의 일생을 다룬 글이 많이 들어 있다.

기의 <유서산기 遊西山記>는 <청평록> 이외의 유람기로, 감회를 담은 훌륭한 문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독은 별로 많지 않으나, 1623년에 쓴 <여북저김판서서 與北渚金判書書>에서는 당시 인조반정으로 인심의 향배가 변한 마당에 폐동궁(廢東宮)의 초상(初喪)을 근신해 봉행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폐비(廢妃 : 광해군의 처)를 학대하지 말고 인왕동 신궁(神宮)에 있는 헌 옷 몇 벌과 궁비(宮婢) 몇 명을 보내 주어 생존하는 동안 어한시질(禦寒視疾)하고 죽거든 세목염관(洗沐斂棺)해 주라고 권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청나라와의 대립이 날카롭던 병자호란 전후에 척화(斥和派)의 으뜸가는 대신의 저작으로서, 당시의 정치적인 형편 및 시대상과 여러 가지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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