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1,502㎡. 흥덕사는 1377년(우왕 3)에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초록한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要節》을 주자(鑄字)하고 발간하였던 사찰로 유명하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는 도서전시회에 이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처음 출품되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을 받음으로써 흥덕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나 그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토지개발공사에서 1984년부터 운천동에 택지를 조성하면서 한 이름없는 절터가 발견되었다. 곧 청주대학교의 주관하에 1985년 발굴을 할 때 출토된 ‘興德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금구(禁口)조각과 청동불발(靑銅佛鉢) 뚜껑으로 이 절터가 흥덕사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절터는 택지를 조성하면서 반파(半破)되어 발굴 결과 금당지(金堂址)·강당지(講堂址)·서회랑지(西回廊址)의 유구만 확인되었다.
이를 토대로 흥덕사의 규모를 재구한다면, 남북 중심축에 중문(中門)·탑과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金堂), 그리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강당(講堂)이 놓이고 금당의 좌우에 정면 12칸, 측면 1칸의 동서회랑이 배치된 단탑가람(單塔伽藍)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대중3년명(大中三年銘)의 기와와 기타 유물로 흥덕사는 늦어도 9세기에 창건되고 고려 말에 화재로 폐사된 것으로 보이며, 청동소종(靑銅小鐘)·금강저(金剛杵)·청동용두(靑銅龍頭) 등 청동제품이 많이 출토되어 미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흥덕사지는 불교사적인 가치보다 인쇄문화사적 의의가 크므로,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하여 인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청주고인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