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좌(靑春座)는 배구자(裵龜子)와 남편 홍순언(洪淳彦)이 개관한 동양극장의 전속극단으로 최독견(崔獨鵑: 본명 象德)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 극단은 본래 대중적인 흥미와 상업주의 연극을 표방하였던 극단으로 대중적인 인기 작가였던 이운방(李雲芳)·이서구(李瑞求) 등과 연출부에 홍해성(洪海星)·박진(朴珍) 등이 대거 참여하였다. 또한 토월회(土月會)의 인기배우였던 박제행(朴齊行)·서월영(徐月影)·심영(沈影) 등과 무명배우였던 황철(黃澈), 그리고 여배우로는 김선초(金仙草)·차홍녀(車紅女)·지경순(池京順)·김선영(金鮮英) 등을 모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한편 동양극장은 사극 전문의 동극좌(東劇座)와 희극 전문의 희극좌(喜劇座)를 창단하여 전문적으로 분업화된 공연 활동을 하고자 했으나,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두 극단을 통합하여 호화선(豪華船)을 창단하게 되었다. 당시 동양극장의 전속단체였던 청춘좌와 호화선이 동양극장을 이끌었는데, 청춘좌가 호화선 보다 인기를 더 얻었다.
1935년 12월 15일에 각 신문에 “극단 중진을 망라한 청춘좌 대공연”이라는 선전문과 함께 최독견의 비극 「승방비곡(僧房悲曲)」과 이운방의 희극 「국경의 밤」, 그리고 최독견의 희극 「기아1개 2만원야 (棄兒一個二萬圓也)」등으로 창립공연을 올렸다.
청춘좌는 이운방의 비극 「슬프다 어머니!」, 최독견 각색 「춘향전」, 임선규(林仙圭)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이서구의 「어머니의 힘」, 박종화(朴鍾和) 원작, 박진 각색 「명기 황진이」 등 많은 작품을 가지고 동양극장 전속 자매극단인 호화선(豪華船)과 더불어 서로 번갈아가며 서울과 지방, 북만주에까지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 중에서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일명 홍도야 우지마라)는 고급신파극으로서 이 시대의 상업극과 대중의 취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공연의 관객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그들 중에서도 기생들이 많았을 정도로, 이 작품은 기생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
그 외에 청춘좌의 주요작품으로는 「백진주와 전원교향곡(田園交響曲)」·「정열의 대지」·「이 자식 뉘자식」·「임자없는 자식들」·「단종애사」·「황진이」·「무정(無情)」·「유정무정(有情無情)」·「청춘송가(靑春頌歌)」·「바람부는 시절」·「수일과 순애」·「공서방」·「사랑」·「신사임당」·「백화(白花)」·「장화홍련전」·「슬프다 어머니」·「여인애사(女人哀史)」·「김옥균(金玉均)」 등이다.
극단 청춘좌는 1939년 홍순언이 사망하고, 최독견이 새 지배인으로 부임하자 불만을 품은 탈퇴자들이 생겼고, 그 때문에 운영도 부진하여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이 극단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상업극을 지속하였던 극단이었다. 또한, 전속배우들에게 월급제를 실시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직업배우를 탄생시켰으며, 이로써 유능한 배우들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