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교회는 1892년 부산에 설립된 장로교회이다. 1892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에 의해 설립되었다. 1910년 한득룡 목사가 시무하였고, 1917년 정덕생 목사가 부임하면서 70여 평의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25년에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기 시작했고, 사회사업으로 1930년 삼일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46년에 부임한 한상동 목사는 그후 장로교 고려파가 생겨날 때 초량교회를 떠나 삼일교회를 설립하였다. 2022년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1892년 11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裵偉良)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영선현에 있던 서당 건물을 매입하여 교회당으로 삼았으며 초창기 교인은 정준환 등 4명이었다. 처음에는 영선현교회, 영주동교회로 불렸다.
1910년 한득룡(韓得龍) 목사가 초대 한인 목회자로 주1, 1913년에는 김주관(金周寬)이 장로로 주2이 되어 당회가 조직되었다. 1914년에 예배당 신축이 시작되어 1917년 정덕생(鄭德生) 목사가 부임하면서 70여 평의 건물을 준공하였다. 김관호 · 반제상 · 김성국 등이 잇달아 장로로 장립되었으며, 1925년에는 주기철(朱基徹) 목사가 부임하였다. 1930년에는 사회사업으로 삼일유치원(三一幼稚園)을 설립하였다. 그 뒤 이약신(李約信) · 김만일(金萬一) 목사로 이어지다가 1946년 한상동(韓相東) 목사가 시무하였다.
1952년 장로교의 분열이 발생하여 고려파(高麗派)로 갈라져 나갈 때 한상동은 300여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삼일교회(三一敎會)를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초량교회의 교세가 약화되었으며, 6·25전쟁 중에는 남대문교회와 합동으로 예배를 보았다.
1967년 예배당이 400여 평으로 증축되었으며, 1972년 교회설립 80주년을 맞아 『초량교회 80년사』를 발간하고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그 동안 반송교회 · 초락교회 · 반여동교회 등을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브라질 · 나이지리아 · 일본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1992년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이한 초량교회는 같은 해 케냐에 나쿠루북장로교회 설립, 『초량교회 100년사』 발간 등의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역사자료 전시관을 개관하여 초기 당회록, 주기철 목사의 주3 등 총 120여 점의 교회 유물을 보관, 전시하였다.
초량교회는 일찍이 항일 민족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민족정신과 신앙의 융합을 이룬 전통을 가지고 있다. 2018년 총회에 의해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22년 교회설립 130주년을 맞아 초량교회 역사관을 새롭게 단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