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회(德會). 증 호조참판 최역(崔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정랑 최철견(崔鐵堅)이고, 아버지는 최간(崔衎)이며, 양어머니는 심우단(沈友端)의 딸이다. 최구(崔衢)에게 입양되었다.
161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7년(인조 15) 사헌부의 정언·장령·헌납, 1639년에는 지제교를 지냈다.
그 뒤 1644년(인조 22)에는 청나라의 천도(遷都) 송축(頌祝)을 위해 서장관으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청주목사를 지낼 때에는 전세를 지나치게 수취했다는 사헌부의 조사 보고가 있었으나, 왕은 토호들로부터 전세를 빠짐없이 받아 국곡(國穀)을 확충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그는 선정을 베풀었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도 표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