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군심(君心). 강원도 양구 출신. 실업가로서 옹기점(甕器店)·목상(木商)·보부상의 반수(班首: 보부상의 우두머리)로 활동하다가 1906년에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었다.
1907년 이후 강원도·경기도 등지에서 맹활약하였다는 기록이 『폭도편책(暴徒編冊)』에도 나타나 있다. 그해 말 부하가 200여명에 달하였으나 점차 감소하여 100여명으로, 주로 양구지역에서 활동하였고, 1907년 12월 당시 의진의 화력은 일본총 3자루, 화승총 40자루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일본인이 많이 오는 것은 옳지 못하므로 우리 의병이 일본인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나라를 위한 행동이다.”라는 신념으로 의병활동에 투신하였으며, 의병항쟁이 실패로 돌아가자 심복동지들과 인적이 드문 골짜기에 은거하면서 5년간을 지냈다.
중병으로 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친우집에서 은신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11년 춘천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