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최유경(崔有慶)이며, 어머니는 시중(侍中) 이종지(李宗之)의 딸이다.
부음으로 사관(仕官), 1416년(태종 16) 2월 중군경력(中軍經歷) 재직 중에 장녀가 태종 왕자인 함녕군(諴寧君)에게 출가하면서 현귀(顯貴), 곧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에 초천(超遷)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9월 다시 당상관에 오르면서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에 발탁, 우부대언을 거쳐 다음해 12월에 예조참의, 1420년 3월에 경기도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421년 12월 경상도도관찰사에 전임되고 이듬해 12월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로 입조, 1423년 3월 병조참판, 이후 1431년까지 좌군동지총제·호조참판·대사헌·병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병조판서에 승진, 세종의 총애가 계속되는 가운데 1434년 1월 장남인 고봉례랑(故奉禮郎) 최승녕(崔承寧)의 딸이 세종 왕자인 임영대군(臨瀛大君)에게 출가, 1436년 12월 의정부참찬에 개수되었다. 이듬해 2월 차녀가 다시 세종 왕자인 금성대군(錦城大君)과 혼인하였다.
또 같은 달에 전년의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 議政府擬議制) 실시와 관련된 찬성·참찬의 각 1인 증치 및 좌·우로 세분됨에 따라 의정부우참찬에 개수되었다. 1441년 9월 의정부우찬성에 승진, 이듬해 6월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대했고, 같은 해 8∼12월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를 내왕하다가 이듬해 죽었다.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고,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시호는 경절(敬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