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회령(會寧). 자는 자경(子敬). 호는 학암(鶴菴).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송시열이 제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에게 패하고 유배되자, 이에 반대하는 유필명(柳弼明)의 소문(疏文)이 올려졌는데 그 소문의 작성자로 지목되어 사천으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제거되면서 풀려나와 그 뒤 준원전참봉(濬源殿參奉)·사옹원봉사·사옹원직장 등을 거쳐, 1686년 회인현감으로 나가 재해를 입은 고을의 신역(身役)을 면제시키는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광양에 유배되었다가 1694년에 풀려나와 광주(廣州)에 은거하였다.
그는 함경도 출신의 사림으로 북도에서는 대단한 추앙의 대상이 되어 북도에 학풍을 떨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로는 『학암집』이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