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장군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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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
작품
고려 말기의 명장 최영에 관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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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말기의 명장 최영에 관한 설화.
내용

최영은 무장으로서 수많은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간신의 발호를 징치한 인물로서, 그의 행적은 『고려사』 열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최영장군의 실제 행적과는 다른 설화가 세간에 전승되는데,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에서 채록된 것이 있다. 강화도 자료는 최영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녀 송분임이 구연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영장군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최영장군은 자신이 직접 시험하여 자기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사윗감으로 고르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젊은이를 불러서 먼저 자기의 재주를 보여주었다. 즉, 최영장군이 목을 자르고 난 뒤 그 목이 다시 붙어 소생하는 재능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면 자신의 혼인이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떨어진 목에 매운 재를 뿌려 아버지의 목이 다시 붙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대적 퇴치설화에서 전이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영장군의 신이한 능력을 강조하는 의미와 억울한 최후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

영월군 자료에 의하면 경상도 덕구리에는 서낭당 당신으로 최영장군을 모시고 있고, 영월군 내덕리에는 단종신을 서낭신으로 모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두 마을의 서낭기가 마주치면 최영장군 모신 깃봉이 저절로 부러진다는데 그 이유는 신하보다 왕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개성 덕물산 무당의 신당에도 최영장군이 신으로 모셔졌는데 이 신에게는 처녀를 바치는 습속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최영장군설화」는 대체로 최영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주변에서 신성성을 견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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