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직산(稷山). 평장사(平章事) 최홍재(崔弘宰)의 아들이다.
무관의 가문으로 일찍 아버지로부터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배웠다.
1124년(인종 2) 이자겸(李資謙)의 시기로 아버지가 승주(昇州) 욕지도(褥地島)로 귀양갈 때, 형 최상(崔翔)과 동생 최단(崔端) 및 장인 노영거(盧令琚)와 같이 먼 곳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1156년 10월에 지합문사(知閤門事)로 의종의 부름을 받고 목청전(穆淸殿)에 들어가서 선구보(善救寶: 병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만든 의료기관)와 양성정(養性亭: 괴석과 아름다운 꽃을 모아놓은 정자)을 두루 구경하고 어원(御苑)의 화훼(花卉)를 감상하였으며 충허각(冲虛閣: 대궐 동북쪽에 세운 화려한 누각)에서 베푸는 잔치에도 참석하였다.
1167년 5월에는 의종과 같이 남강(南江)에 배를 띄워놓고 밤에는 보현원(寶賢院)으로 옮겨 즐기기도 하였다. 1170년 판중군병마사(判中軍兵馬事)에 이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고 다시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 이르렀다가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