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함경남도 덕원 출신. 아버지는 창희(昌熙)이다.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 신학교)에 재학하면서 농촌계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황애덕(黃愛德, 황에스터)의 지도로 농촌운동이론을 터득하는 한편, 1929년 황해도 수안에서 동료 김노득과 함께 3개월 동안 실제적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학교를 중퇴하고 농촌운동에 전념할 것을 결심, 감리교선교사 밀러(Miller)의 후원을 받고 파송단체는 YWCA 소속으로 하여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농촌교육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야학으로 시작하였으나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정식 교사(校舍)를 지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교육내용은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뿐만 아니라 산술·보건 및 농촌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기술, 애국심과 자립심을 북돋우는 의식계몽 등에 힘을 기울였다. 당시 김활란(金活蘭) 등은 샘골에서 행한 최용신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기도 하였다.
1934년 일본 고베신학교(神戶神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신병으로 귀국하였고, 샘골에서 휴양하면서 농촌교육을 계속 전개하다가 장중첩(腸重疊)으로 병사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용신봉사상(容信奉仕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의 무대가 된 곳이 샘골이며,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최용신은 국권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농촌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하여 순교자적인 활동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