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정재(鼎齋). 서울 출생. 1915년에 서화미술회강습소 화과(畵科)에 입학하여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晋) 밑에서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등과 함께 전통화법을 폭넓게 수업하고 1918년에 졸업하였다.
1921년 서화협회가 설립되자 정회원으로 참가하였고 서화협회전람회에 화조화, 영모화, 어해도(魚蟹圖) 등을 출품하였다. 1929년에는 15명으로 구성된 협회 운영 간사진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는 1924년부터 참가하여 1934년까지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의 현실적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 인물상 연작으로서 「포은공(圃隱公)」, 「이충무공(李忠武公)」, 「고운선생(孤雲先生)」, 「을지문덕(乙支文德)」 등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최우석의 역사인물화는 화단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의 산수화와 인물화는 일본적인 채색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에는 전통적 수묵 담채화의 관념적 작품으로 회귀하여 산수화와 신선도 등을 주로 그렸다.
1940년에는 오세창(吳世昌) 등의 자문을 받아 조선미술관이 주최한 『10명가산수풍경화전』에 초대되어 「일하도해(一蝦渡海)」를 출품하는 등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보였다.
광복 후에는 1961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을 역임하며 역사인물화·도석인물화·화조화·어해도 등을 출품하면서 명성을 유지하였다. 현존하는 대표작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전가풍미(田家風味)」(195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