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검교사부낭중, 사자금어대신 등을 역임한 관리. 외교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검교사부낭중(檢校祠部?中)|사자금어대신(賜紫金魚袋臣)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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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검교사부낭중, 사자금어대신 등을 역임한 관리. 외교관.
내용

최치원이 지은 「견숙위학생수령등입조장(遣宿衛學生首領等入朝狀)」과 「사은표(謝恩表)」등에 의하면 최원은 최치원과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891년(진성여왕 5)에 당나라 소종(昭宗)의 등극을 축하하는 사행(使行)의 판관(判官)으로 갔다가 6년간 당나라에 머문 뒤 897년(효공왕 1) 7월 5일에 돌아왔다.

당나라에 갔을 때의 관직은 다만 검교사부낭중(檢校祠部郎中)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사자금어대신(賜紫金魚袋臣)이 되어서 왔다. 한편, 돌아올 때에 효공왕의 할아버지 경문왕과 아버지 헌강왕의 증직관고(贈職官告)를 가지고 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동사강목(東史綱目)』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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