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안악 출신.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 황해도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가 추진하던 만주의 무관학교의 설립과 독립군기지의 창건사업을 저지하기 위하여 일제가 안악사건을 만들어 황해도의 신민회회원을 일제히 검거하자, 1911년 1월에 붙잡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5년간 복역하였다.
1921년 상해임시정부 적십자사장 안정근(安定根)으로부터 임시정부 자금모집을 의뢰받고 나태섭(羅泰燮) 등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보내고 계속 군자금모집사업을 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34년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로부터 김구의 가족을 상해로 보내라는 의뢰를 받고 귀국하여 안악에 거주하던 김구의 어머니와 아들을 김선량(金善亮)으로 하여금 호송하도록 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