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생. 소학교 시절을 진남포 삼숭학교(三崇學校)에서 보내고,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를 거쳐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4년까지 재학 중 동맹휴학사건에 연루되어 중퇴하였다.
일찍이 『조선일보』에 「춘보(春甫)」, 『조선농민(朝鮮農民)』에 농민소설 「대간선(大幹線)」·「폭풍우전(暴風雨前)」(중편)·「신작로(新作路)」(희곡)·「형제」(단편)를 발표하였다.
이어 『신소설(新小說)』지에 「양돼지」·「하나님의 딸」·「그의 수기(手記)」 등의 단편을 발표하였으며, 1934년『동아일보』에 「황소」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정식 데뷔하였다. 주로 농촌에서 취재한 것이 많았으며, 당시의 농촌 현실과 젊은이들의 암담한 운명을 주로 다루었다.
특히, 중편 「암류(暗流)」(『신동아』, 1934.9.∼12.), 단편 「안해」(『조선문단』, 1935.4.)·「통곡하는 대지」(『사해공론』, 1936.3.)·「춘잠(春蠶)」(『조선문학』, 1936.6.) 등에서는 식민지시대 우리 민족의 궁핍한 삶을 그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밖에 「폭양(暴陽) 아래서」(『조선일보』, 1935.3.21.∼4.2.)·「상투」(『신동아』, 1935.5.)·「삼년후(三年後)」(『신가정』, 1935.12.)·「밤」(『사해공론』, 1936.1.)·「수술(手術)」(『사해공론』, 1936.2.)·「이른 봄」(『신동아』, 1936.4.)·「여점원」(『신가정』, 1936.5.)·「잊혀지지 않는 소년」(『부인공론』, 1936.7.)·「약질(弱質)」(『조선문학속간』, 1936.11.)·「종국(終局)」(『사해공론』, 1936.12.)·「우정」(『풍림』, 1936.12.)·「셰퍼드 주인」(『풍림』, 1937.2.)·「두 어머니」(『백광』, 1937.3.)·「호박」(『농업조선』, 1938.1.)·「제고양지묘예혜(帝高陽之苗裔兮)」(『문장』, 1940.7.) 등의 소설이 있다.
그리고 평론 「문학잡지에 대하여」(『신동아』, 1936.6.)·「악령(惡靈)에 비견(比肩)할만한 종생(終生)의 대작(大作)을」(『조선일보』, 1937.1.22.∼24.)·「엄흥섭론(嚴興燮論)」(『풍림』, 1937.3.) 등이 있다. 엄흥섭·현경준(玄卿俊)과 함께 동반작가(同伴作家)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