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옥(贊玉), 호는 해동초인(海東樵人)·동초(東樵). 경기도 광주 출신. 아버지는 개화기 언론인인 영년(永年)이며,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어릴 때에는 광주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여 사서삼경까지 마쳤고, 갑오경장 후 1897년 아버지가 광주에 설립한 시흥학교(時興學校)에 입학,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뒤에 서울로 올라와 관립한성중학교(官立漢城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신학문을 공부하고 문학에 뜻을 두어 1907년에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說部叢書)』를 번역한 뒤 우리 나라 현대소설의 토대가 된 신소설 창작에 착수하였다. 『자선부인회잡지』 편집인과, 『신문계(新文界)』·『반도시론(半島時論)』 등의 기자노릇을 하였다.
말년에는 뚝섬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실기(實記)를 집필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추월색(秋月色)」(1912)을 비롯하여, 「안(雁)의 성(聲)」(1914)·「금강문(金剛門)」(1914)·「도화원(桃花園)」(1916)·「능라도(綾羅島)」(1919)·「춘몽(春夢)」(192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이성간의 애정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중심은 민족의식이나 자주독립 등의 정치적인 면보다 애정문제, 풍속적 윤리·도덕문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신식결혼관이나 연애가 표면적으로만 등장할 뿐, 궁극적인 주제는 고대소설적인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찬식의 소설은 당대 신소설의 한계 및 통속화 현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