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1908년부터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기독교인들을 심방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였다. 1910년부터 1941년까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을 예고하는 설교를 하였다.
1941년 전국선교사총회에서 대회장으로 선출되자 전국교계에 신사참배거부를 지시하고 항일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1943년 2월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신사참배거부지시를 취소하고 기독교선교사의 모임을 해산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거부하며 그 부당성을 성토하다가 1943년 6월 2일 죽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