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 문장가였던 함월(涵月) 최응성(崔應聖, 1655∼1727)의 생가로 알려지고 있는데, 원래는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던 것을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현 위치로 다시 옮겨 복원하였다. 안채와 사랑채인 염선재(念善齋), 사당인 무릉사(武陵祠), 그리고 함월정(涵月亭)이라는 정자가 남아 있다.
건물의 전체 배치는 ㄱ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좌측으로는 최응성이 서재로 사용하던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된 염선재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우측으로는 ㄱ자형의 창고가 사괴석(四塊石) 담장으로 일곽을 만들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또한, 안채와 통로로 사용하는 동측담을 사이에 두고 1874년(고종 11년) 후손들이 건립하여 최응성과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1721)를 향사하는 무릉사가 있으며, 고택 앞으로는 권상하가 찬양하여 최응성의 호를 따서 함월정이라 이름을 붙인 정자가 있다.
안채의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1칸에 다시 꺾이어서 정면 3칸, 측면 1칸을 이루면서 ㄱ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안채는 2칸 통칸의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편에 1칸 반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을 ㄱ자형으로 꺾이는 부분에 드렸고 여기에 붙여서 1칸 반의 부엌을 만들었는데 상부를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보아지 없이 주심도리와 대들보만이 함께 결구되어 있다. 지붕틀은 대들보 위에 동자주대공을 직접 놓고 종도리를 받고 있는 3량가구(三樑架構)에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와 서재인 염선재, 그리고 행랑채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고 또 그 옆에는 사당인 무릉사가 있고 앞으로는 단아하고 운치있는 함월정이 서로 위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구성요소를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는 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