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초(太初) 또는 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 대구 출신. 할아버지는 최수학(崔壽學)이고, 아버지는 최정석(崔鼎錫)이며, 어머니는 진사 조숭(趙崈)의 딸이다.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교관(敎官)이 되었고, 1782년 장악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1784년 세자익위사좌익찬(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침식(寢食)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대대로 달성의 칠계에 살았기 때문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백성들의 살기 어려운 정상을 보고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하여 규약을 세우고 강학(講學)과 근검으로 저축에 힘쓰게 하며 선공고(先公庫)·휼빈고(恤貧庫) 등을 두어 생활안정을 얻게 하였다.
이것이 당시 부인동동약(夫仁洞洞約)이며 100여 년 동안 지속된 유명한 향약이다. 죽은 뒤 1789년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고, 이듬해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백불암집』 8권 7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