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숭도감의궤 ()

목차
관련 정보
추숭도감의궤
추숭도감의궤
유교
문헌
조선시대 추숭도감에서 임금의 사친(私親)에 대해 사후에 왕 또는 왕후의 칭호를 올려 추숭하는 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의궤.
목차
정의
조선시대 추숭도감에서 임금의 사친(私親)에 대해 사후에 왕 또는 왕후의 칭호를 올려 추숭하는 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의궤.
내용

1610년(광해군 2)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金氏)를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숭한 기록인 ≪광해군사친추숭도감의궤 光海君私親追崇都監儀軌≫ 1책, 1777년(정조 1) 효장세자(孝章世子)와 현빈 조씨(賢嬪趙氏)를 진종(眞宗)과 효순왕후(孝純王后)로 추숭한 기록인 ≪진종추숭도감의궤 眞宗追崇都監儀軌≫ 1책, 1834년(현종 즉위) 효명세자(孝明世子)를 효명대왕(孝明大王 : 익종)으로 추숭한 기록인 ≪문조추숭도감의궤 文祖追崇都監儀軌≫ 2책 등이 있다.

각 의궤의 내용은 대개 목록에 이어 좌목(座目)·시일(時日)·승전(承傳)·이문(移文)·내관(來關)·예관(禮關)·의주(儀註)·감결(甘結)·재용(財用)·상전(賞典), 그리고 소임에 따라 구분한 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표석소(表石所)·조주소(造主所)·별공작(別工作)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좌목>에는 도제조(都提調) 1∼3인, 제조 3∼9인, 도청(都廳) 2인, 낭청(郎廳) 7∼12인, 그 밖에 감조관(監造官) 등의 명단이 있다. 도제조는 으레 영의정이나 좌의정·우의정·영중추부사 등 정1품 중에서 임명된다.

<시일>에는 빈청의호(賓廳議號)·각방시역(各房始役)·책보봉과(冊寶封裹)·각방사역사완필(各房事役完畢)·습의(習儀)·시책보(諡冊寶)의 봉헌, 신주봉안, 구주매안(舊主埋安) 등 행사와 작업 일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문>과 <내관>에는 각 관서와 주고받은 공문, <예관>에는 묘호(廟號)·시호(諡號)·능호(陵號)·전호(殿號)·시보식(諡寶式)·제주식(題主式) 등 의식을 치르는 절목과 일정, <감결>에는 도감이 하급기관에 내린 공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일방> 의궤에는 옥책(玉冊)과 채색된 시책도(諡冊圖) 및 반차도(班次圖), <이방> 의궤에는 채색된 금보(金寶)·보통(寶筒) 등의 도식, <조주소>에는 신주 조성에 관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추봉의궤 追封儀軌≫는, 명칭은 다르나 ≪추숭도감의궤≫와 유사한 종류의 의궤로서, 1907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헌의대원왕(獻懿大院王)으로, 어머니 여흥부대부인을 순목대원비(純穆大院妃)로, 고종의 큰아들 완화군(完和君)을 완효헌왕(完孝憲王)으로 추봉한 기록이다.

그리고 1899년 태조·장조·정조·순조·익종을 황제로, 아울러 각 왕후를 황후로 추존한 기록인 ≪추존시의궤 追尊時儀軌≫, 1908년 진종·헌종·철종을 황제로 추존하고 각 왕후를 황후로 추존한 기록인 ≪추존시의궤≫ 등이 있다. 이 의궤들은 모두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광해군사친추숭도감의궤(光海君私親追崇都監儀軌)』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민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