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원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문무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왕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재상(宰相)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문무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왕자.
활동사항

676년(문무왕 16) 2월에 왕자(王子)의 신분으로 대감(大監) 급찬(級湌) 김비소(金比蘇), 대감 내말(奈末) 김천충(金天沖), 제감(第監) 대마(大麻) 박무마(朴武摩), 제감 대사(大舍) 김락수(金洛水) 등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송사(送使) 내마(奈末) 김풍나(金風那)와 김효복(金孝福)이 축자(築紫)까지 호송하였다. 같은 해 4월에 일본의 난파(難波)에 이르렀고, 8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한편 이때의 제감(第監)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제감(弟監)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마는 그 서열로 보아 대내마(大奈麻)라기 보다는 대사(大舍)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683년(신문왕 3)에는 재상(宰相)으로 있으면서 굴정현(屈井縣)에 영축사(靈鷲寺)를 창건하였다. 즉 충원은 장산국(萇山國)의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성(城)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掘井驛)의 동지야(桐旨野)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매로 꿩을 사냥하는 장면을 구경하였다. 매에 쫓긴 꿩이 굴정현 관청의 북쪽 우물 속에 있고,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는데 물이 마치 피빛 같았다.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매도 측은히 여겼는지 잡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측은한 느낌이 있어 그 땅을 점쳐 보았더니 절을 세울 만 하다고 하였다. 충원은 서울로 돌아가 신문왕에게 아뢰어 현청(縣廳)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영축사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일본서기(日本書紀)』
『일본 육국사 한국관계기사 역주』(최근영 외, (재)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4)
「신라 중대의 불교사상 연구」(김상현, 『국사관논총』 85, 1999)
「8세기의 신라와 일본의 관계」(김은숙, 『국사관논총』 29, 1991)
「新羅王族金乘元․忠元の來朝記事」(渡辺康一, 『龍谷史壇』 106,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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