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백제의 북방 요새로서 도랍(刀臘, 또는 雉岳城)이라고도 하며 고구려와 분쟁이 잦았던 곳이었다. 369년(고국원왕 39)에 고구려 군사 2만여 명이 남으로 백제를 정벌하여 이곳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침탈하였다.
이에 백제의 근초고왕은 태자〔近仇首〕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고구려군을 급히 치게 하여 백제군이 큰 승리를 거두니, 고구려군 5,000여급을 사로잡아 이들을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치양은 배천(白川)의 진산(鎭山)이었던 치악산으로 보는데 이곳에는 조선 말기까지 산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