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반걸양(半乞壤)전투’라고도 한다. 중국 한(漢)나라가 설치한 대방군(帶方郡)이 소멸된 뒤, 대방군의 옛 땅을 두고 고구려와 백제는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369년(근초고왕 24) 9월 백제는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보기(步騎) 2만을 거느리고 치양(반걸양 : 지금의 황해도 白川)에 주둔하면서 군대를 나누어 백제의 민가를 침탈하는 등의 공격을 당하였다. 이에 백제 근초고왕의 태자 근구수(近仇首)는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치양에 나아갔다.
이 때 본래 백제인으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하였던 사기(斯紀)가 다시 돌아와 근구수에게 고구려의 군대는 숫자만 많을 뿐 실제 강한 자들은 적기(赤旗) 뿐이니 이를 치면 이길 수 있다는 비밀을 말하여 주었다.
근구수는 이 말에 따라 고구려군을 공격하여 크게 이기고 5,000여 명이나 사로잡았다. 또 계속하여 도망치는 고구려군을 북쪽으로 추격하여 수곡성(水谷城 : 지금의 황해도 新溪) 서북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곳에 돌을 쌓아 표지를 삼고 회군하였다. 백제는 이 싸움의 승리로 대방군이 있던 황해도지역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며, 많은 한인(漢人)계통의 주민들을 흡수하여 백제의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