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원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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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사건
1868년(고종 5) 경상도 칠원현(지금의 함안군)에서 일어난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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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68년(고종 5) 경상도 칠원현(지금의 함안군)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현감 조현택(趙顯宅)의 탐학에 항거하여 일어났다. 주동자인 황상기(黃上基)·이도여(李道汝)·전홍이(全弘伊) 등은 통문을 돌려 민중을 규합하여 객사(客舍)에서 단체로 모여 곡(哭)을 하고 현감을 축출하였으며, 감옥을 파괴하였다.

그런데 황상기 등 민란의 주모자는 난을 일으키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감영에 호소하였으며, 여기에는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하리(下吏) 3명도 가담하였다. 주모자의 한 사람인 이도여는 몇년 전 민란의 누망죄인(漏網罪人 : 수사망에서 바진 죄인)이었다고 하는데, 그 민란이 어떤 민란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편, 정부에서는 행부호군(行副護軍) 조창영(趙昌永)을 칠원현감 겸 안핵사로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하였다. 결국 황상기·이도여·전홍이 등은 효수되고, 그 밖에도 다수의 민란 참여자가 유배 등의 형을 받았다.

그리고 민란을 야기시킨 현감 조현택은 경상감사로부터 파면되었다가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고 강진현(康津縣)으로 유배되었다. 이 민란에 무근동과 구산면에서는 한 사람도 가담하지 않았는데, 무근동은 주세붕(周世鵬)의 후예가 많이 사는 곳이었다. 이로 인하여 무근동의 주희상(周熙商)은 관리에 임용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동학란기인에 관한 연구』(한우근, 한국문화연구소, 1971)
「고종조의 민란연구」(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 14, 1980)
집필자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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