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23년(인조 1) 교동(校洞)에 중건되었으며, 1760년(영조 36) 현감 임우춘(林遇春)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846년(헌종 12) 대성전을 중수하고, 1869년(고종 6) 현감 박신영(朴愼永)이 사재를 들여 보수하였다. 1879년 현감 김상종(金尙鍾)과 교임 배문익(裵文翊) · 이재연(李在淵) · 황구연(黃龜淵)이 보수하였다.
1910년 함안향교(咸安鄕校)에 병합되었다가, 1957년 정부의 보조를 받아 이 지역 유림에 의하여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내삼문(內三門) · 명륜당 · 풍화루(風化樓) · 직사(雇直舍)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재와 서재, 그리고 풍화루 등이 있고, 좌우에 동무, 서무가 없는 대성전 단독 구조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전적 가운데『향안(鄕案)』 · 『무릉지(武陵誌)』 · 『칠원지(漆原誌)』 · 『칠원읍지(漆原邑誌)』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와 장의(掌議)가 담당하고 있다.